지난 겨울 피부과에 방문한 적이 있다. 두피에 문제가 생겨서 였다. 점점 늘어나는 새치가 보기 싫어 까맣게 염색을 시작한 것이 몇 년째 였는데, 미용실을 바꿨다가 탈이 나고 말았다. 염색을 할 때부터 열감이 느껴지고 아프더니, 집에 와서 며칠이 지나자 두피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비늘처럼 벗겨지던 껍질이 점점 이마로 타고 내려왔고 헤어라인을 따라서 빨갛게 발진과 포진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물도 났다. 머리가 빠지면 어쩌나 걱정이었고, 비듬보다 훨씬 더 큰 크기로 떨어지던 두피 각질이 너무 창피했다. 어떻게 해결해보고 싶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피부과를 방문했지만 스테로이드의 사용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었다. 스테로이드제를 먹고 한 일주일은 잠잠하던 것이 약 복용을 끝내고 며칠 후 다시 증상이 도드라졌고, 두어 달을 버티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 다시 염색을 하지도 못하고 새치가 그대로 드러난 채로 다니던 그간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피란 것이 그렇다. 피부가 좋은 건 바로 티가 나지만 두피는 건강한지 아닌지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다. 나도 딱히 내세울 건 없는 두피였다. 다만 피지가 많이 분비되지 않는 편이라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일주일에 두세 번 머리를 감으면 충분했다. 딱히 가렵거나 아픈 적도 없었다. 두피로 고민을 해 본 적이 아예 없었다. 그러다가 한 번 저렇게 혼쭐이 나고 나니 두피가 고민인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간은 샴푸를 고를 때의 기준이 향과 가격이었는데, 두피가 망가진 사이에 샴푸도 꼼꼼히 보게 되고, 스칼프 세럼까지 구매를 고민했었다.

내 경우는 약품으로 인한 특이한 경우였지만, 두피 문제는 만성인 경우가 많다. 개인의 위생 상태와는 상관없이, 아무리 세수를 해도 여드름은 사라지지 않고, 건조한 피부는 늘 건조하고, 기름진 피부는 늘 기름진 것처럼, 두피도 그렇게 문제성 두피는 아무리 잘 감아도 탈이 난다. 간절기에는 간절기라서 두피가 예민해지고, 겨울엔 춥고 건조해서 문제가 된다. 여름이 가장 악명높다. 두피의 온도가 오르고, 땀이 많이 나며, 특히 강한 자외선에의 노출은 다른 계절에는 없던 또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신체 각 부위의 피부는 다르다. 두피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몸의 피부 중에서 가장 기름지고, 문제가 생기기 쉬운 피부가 아닐까 싶다. 두피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시중에는 다양한 기능의 샴푸를 비롯해서 두피 케어를 위한 아주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왜 두피가 이렇게 문제일까’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이 비슷하다. ‘지루성 두피염’이나, 최근 부상한 키워드인 ‘마이크로비옴’ 불균형 등의 답으로 귀결된다. 특히나 요즘의 새로운 연구들은 대부분 두 가지 두피 상재균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사실 두피 가려움은 (모든 생물학적 특성들이 그러하듯) 상당히 복잡하고 다양한 원인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일어난다. 따라서 원인의 해결을 통한 개선은 상당히 어렵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딱 집어서 밝혀내고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피와 관련해서 여러분이 들어보지 못한 특별한 원인에 대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그거 기분 탓이야’ 라는 말이 있다. 감각이 착각일 뿐 실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두피에서는 그렇지 않다. 두피의 가려움에는 신경증적인 요소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두피가 발갛게 발진이 오르고 가려워지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감각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낭의 각질세포가 프루리토겐 (pruritogen)이라고 하는 간지러움을 느끼게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그중 하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행복 호르몬, 엔도르핀이다. 엔도르핀은 뇌에서는 행복을 느끼게 하지만, 피부에서는 가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단순해 보이는 두피의 가려움증도 세균부터 피지 분비, 호르몬까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워낙 다양하기에 원인부터 잡아서 치료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지만, 두피 문제의 발생 원인은 찾기가 어려워도, 왜 두피가 가려운 지는 안다. 여러 원인들이 결국은 하나로 통한다.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비만세포가 활성화되어 히스타민을 분비하도록 한다. 내가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제를 처방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염증과 관련한 증상의 완화를 위해서다. 그렇다면, 두피 문제로 고생하는 소비자 각자가 가지는 원인은 다르더라도, 염증 반응을 완화시켜주고 히스타민 분비를 억제하는 원료로 제품을 개발하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사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